우리 역사 속 금속공예
예로부터 금속공예품은 왕실과 귀족의 권위와 문화를 상징해 왔을 뿐만 아니라,
최고급 종교 (불교) 물품의 소재로써 사용되어왔다.
왕실과 귀족의 금속공예
예로부터 금속공예품은 사용한 이의 권위를 표현하였다. 청동기가 전래된 이래 제사장의 의식용 도구는 청동으로 제작되어 그 위엄을 드러냈다.
왕실 금속공예의 본격적인 시작은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된 삼국과 통일신라 시기였다. 화려한 장신구는 왕실 권력의 상징이었고, 그 결과 통일신라 왕실의 일상용품은 모두 황금으로 제작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선 왕실뿐 아니라 귀족이 사용하는 일상용품까지 금속 공예의 범위가 확장되었다. 이 경향은 조선으로 이어졌다. 임금의 식기는 은과 유기로 제작되었으며, 금.은.호박 등 갖은 보석으로 치장된 장신구는 지체 높은 부녀자의 상징이었다.






불교 금속공예
불교는 삼국시대 후반 국교로 공인된 이후 우리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단순한 종교를 넘어선 통치 이론이자 최고의 가치관이었다. 때문에 사찰의 모든 물품들은 최고급으로 제작되었는데, 사리함과 향로, 범종, 불상 등 대부분이 금속공예품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재료와 기법이 매우 다양하였는데, 이는 불교적 이상향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통일신라 말미에 시작된 불교 금속공예는 전통 금속공예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특히 고려시대에 지배 세력과 결합하여 그 꽃을 피우게 되었다.







120년 전통 왕실전통공예

곽씨공방
곽씨공방은 조선후기 궁궐 근처 인사동에 터를 잡은 이래 4대에 걸쳐 금속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궁에서 필요한 물품 및 양반들의 고급 생활용품에서부터 향로와 사리함과 같은 고급 사찰용품 만들며 대를 이어 기술을 전수해 왔다. 현대에와서도 청와대 및 외국 귀빈행사에서부터 대형사찰로부터 의뢰를 받아 작품 활동을 하며 명품 금속공예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3대 곽홍찬 장인이 초대 故 곽순복 장인, 2대 故 곽상진 장인으로부터 기술을 물려받고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딸 역시 금속공예를 전공함으로써 4대째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곽씨공방의 상징 '쌍학'








